AI 시대, 개발자는 무엇의 오너가 되어야 할까#
2026-03-18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필자의 심리 상태도 몇 년 사이 꽤 크게 흔들렸습니다.
AI가 본격적으로 일의 방식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자신감이 높은 개발자였습니다. 개발 자체도 좋아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이자 풀스택 엔지니어를 지향했고,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 강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AI 기반 도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Cursor 같은 도구를 쓰기 시작하면서 생산성이 눈에 띄게 올라갔고, 한동안은 오히려 자신감이 더 커졌습니다. 세상이 필자 같은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개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1인 스타트업도 더 많아질 것 같았습니다. “이제 진짜 작은 팀이나 개인도 큰 일을 할 수 있겠다"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 시기에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컸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개발자뿐 아니라 비개발자도 AI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업무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관련 아이디어를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새로운 AI 도구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가졌고, 실제 업무 방식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기대감이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한 운영자가 Claude Code를 활용해 자신의 업무 환경을 꽤 구조적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 환경에서는 데이터 수집과 분석, 리포트 작성과 배포, 태스크 관리, 광고 운영과 분석 같은 일들이 상당 부분 자동화되어 있었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사람이 기술적인 장벽 때문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AI에게 물어보고, 막히는 부분은 안내를 받아 해결하고, 자신의 업무 흐름을 계속 다듬어 갔습니다.
필자에게 특히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필자가 공들여 만든 어드민 페이지 대신 그 AI 작업 환경 안에서 직접 데이터를 수정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그런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감정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기술을 잘 아는 사람만의 해자는 생각보다 빨리 약해질 수 있겠구나"라는 감각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불안의 정체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 감정을 곱씹어 보니, 거기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었습니다.
- 하나는 실제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 다른 하나는, 그 변화 앞에서 필자의 상대적 희소성이 약해지는 듯한 감정이었습니다.
전자는 현실 인식에 가깝고, 후자는 정체성의 흔들림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 둘이 섞이면, 현실 판단도 흐려지고 감정도 더 무거워진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잘 알고, 프레임워크나 클라우드 리소스의 의미를 잘 아는 것 자체가 큰 강점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무의미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식의 세부를 몰라도 AI를 통해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장기적인 안정을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워크플로우를 구조화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하고, 반복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일조차 이제는 꼭 엔지니어만의 영역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
이 지점에서 필자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예전의 질문은 이것에 가까웠습니다.
- 앞으로도 개발자가 중요한가
- AI가 있어도 기술력이 해자가 될 수 있는가
-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 더 유리한가
지금 필자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 AI를 이용해 만들어진 가치의 어느 지점에 누가 소유권을 갖는가
이 질문으로 옮겨 오고 나니, 생각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만들어진 가치의 일부를 내가 직접 가져갈 수 있는가"가 되었습니다.
만드는 능력보다 소유권이 중요해지는 이유#
AI는 생산비를 낮춥니다.
예전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적은 인력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생산비가 낮아질수록, 역설적으로 생산 행위 자체의 희소성도 낮아집니다.
기능은 더 빨리 복제되고, 겉으로 보이는 결과물은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것은 보통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 어떤 문제를 풀지 정하는 능력
- 고객 또는 사용자의 실제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게 만드는 신뢰
- 유통과 채택을 만들어내는 힘
- 데이터와 관계를 쌓아가는 구조
- 생산된 가치에 대해 보상을 직접 연결받는 구조
즉 앞으로는 “필자가 잘 만들 수 있다"보다 “필자가 만든 것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쓰이고, 신뢰를 얻고, 관계와 데이터가 쌓이며, 결국 돈으로 이어지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생각은 비즈니스로 향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필자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비즈니스 쪽으로 흘렀습니다.
1인 스타트업을 하든, 회사 안에서 개발자가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운 역할을 맡든, 중요한 것은 owner에 가까운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너는 꼭 회사를 창업한 사람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오너십은 조금 더 넓은 개념입니다.
- 생산된 가치의 일부를 직접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위치
- 무엇을 만들지, 어떤 문제를 풀지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
- 결과에 대해 책임도 지지만, 그만큼 보상도 연결되는 위치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AI를 잘 쓰는 개발자"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AI를 이용해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만들까 보다 무엇의 오너가 될까
카피가 쉬운 시대의 불안#
여기에는 또 하나의 고민이 따라옵니다.
AI를 이용하면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만큼, 다른 사람도 비슷한 속도로 따라올 수 있다는 불안도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마케팅 싸움, 더 나아가 자본 싸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꽤 불리한 구도처럼 보입니다. 이 걱정도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필자는, 카피를 완전히 막는 것이 핵심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카피되어도 쉽게 빼앗기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 아주 구체적인 고객 문제를 푸는 것
- 특정 조직이나 업계의 실제 업무 흐름 안에 깊게 들어가는 것
- 고객과의 신뢰를 쌓는 것
- 반복 사용과 데이터 축적이 일어나는 구조를 갖는 것
-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운영 방식과 해석 방식까지 함께 제공하는 것
결국 해자는 기능 그 자체보다, 관계와 맥락과 축적에서 생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자가 붙잡고 싶은 방향#
지금 시점에서 필자가 붙잡고 싶은 방향은 아주 단순합니다.
첫째,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그룹에 속해야 합니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도구를 멀리하기보다 누구보다 능숙하게 다루는 쪽에 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둘째, 기술 자체를 목적이 아니라 생산수단으로 봐야 합니다.
무엇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자산으로 이어지는지를 더 자주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 가능하면 가치 포착 지점에 가까이 가야 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성과와 연결된 문제를 함께 책임지는 쪽으로 움직이고, 회사 밖에서는 작더라도 필자 이름으로 소유권이 있는 실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넷째, 엔지니어라는 정체성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만 머무를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엔지니어링 감각을 가진 채로 비즈니스 감각, 운영 감각, 고객 감각을 붙이는 편이 더 강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필자는 여전히 개발이 좋습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구조를 잡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일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이제 개발자는 끝났다” 같은 결론으로 가고 싶은 글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AI 시대일수록 만드는 능력은 더 넓게 퍼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서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필자가 준비해야 할 다음 단계도 아마 그 방향일 것입니다.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AI를 이용해 만들어진 가치의 일부를 직접 소유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가치 흐름의 일부를 가진 사람으로 서는 것 말입니다.
아직 답을 다 찾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은 조금 더 선명해졌습니다.
AI 시대에 개발자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그 질문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지금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AI 시대에, 필자는 무엇의 오너가 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