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잡힌 블로그의 방향성: 컨텐츠 생산 공장으로#
2026-01-10
드디어 제 블로그에 대한 방향성이 잡혔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보다(아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꾸준히 있었지만, 왜 쓰는지, 무엇을 쓸지,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답이 늘 흐릿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시작은 있었고, 잠깐의 열정도 있었고, 결국 멈춘 시간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시행착오들이 쌓여서, 이제야 ‘이 정도면 오래 갈 수 있겠다’ 싶은 형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블로그를 만든 것은 2007년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남들 다 하는 블로그, 나도 해보자” 정도의 마음으로 네이버 블로그(알아가는 재미)를 개설했습니다. 마침 블로그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고, 저도 어렴풋이 “파워블로거” 같은 것을 꿈꾸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욕심만 있고 운영 의지는 없던 상태였습니다. 무엇을 축적하고 싶은지, 어떤 독자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 제 삶에서 블로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전혀 정하지 않은 채로 “일단 만들어 둔” 것에 가까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즈음에는 좀 더 ‘의미 있는’ 블로그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사이트 문서를 번역해보자는 생각으로 티스토리 블로그(안드로이드-KR)를 만들고, 어느 정도 글도 썼습니다. 그때는 제가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던 시기였고, 개발에도 자신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에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원문을 기계적으로 직역하는 번역이 아니라, 제 방식대로 의역하고 맥락을 보강하고, “여기서 헷갈리는 포인트는 이거다” 같은 추가 설명을 붙이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페이지 하나를 추가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제 말’로 다시 설명하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 책임이 생깁니다. 표현을 바꾸는 순간 의미가 미묘하게 틀어질 수 있고, 제가 덧붙인 설명이 오히려 오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문장을 쓰는 과정이 “제가 아는 것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제가 정말로 아는지 재확인하는 작업”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안드로이드는 그 시기에 특히 빠르게 변했습니다. 이미 작성한 문서도 곧 업데이트가 필요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이 방식이 맞나?”라는 질문이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저는 거기서 멈췄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 2023년, ChatGPT가 등장했을 때 다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뭔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네이버 블로그(GPT와 블라블라)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기존 네이버 블로그는 개인 일기장에 가깝게 쓰고 있었고, 새 블로그는 ChatGPT를 사용하면서 어떤 프롬프트에 어떤 응답을 받았는지, 그리고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가 어떤 식으로 프롬프트를 작성했는지를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기록은 네이버에서 검색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꽤 열심히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노출 수가 너무 안 나오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이유를 “노출”에만 두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동기부여는 결국 현실의 신호와 연결됩니다. 신호가 전혀 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계속 써야지”라고 마음을 붙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 “이게 맞나?”를 고민했고, 결국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다음을 기약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2025년 중반쯤, 다시 블로그를 새로 시작해보고자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실패를 교훈 삼아 “방향을 제대로 잡고 시작하자”는 다짐이 강했습니다. 과거에는 광고 같은 수익화에 대한 니즈가 별로 없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광고 / 후원 / 판매 같은 수익 실현 수단을 붙일 수 있는 자유도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글을 쉽게 등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쓰기가 번거로우면 결국 멈추게 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Jekyll + GitHub Pages)도 고민해 보고, 노션 기반 블로그도 고민해 보다가, 결국 Hugo를 이용한 정적 사이트로 결정했습니다. 결정을 밀어준 것은 “개발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Cursor로 개발 업무를 하고 있었고, 사용하다 보니 Cursor가 개발 외 업무에도 충분히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특히 문서 작성/편집은 텍스트 기반 파일을 다루는 일이 많고, 폴더 단위로 자료를 쌓아두면 AI가 맥락을 이해해 주기 때문에 생산성이 크게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굳이 외부 플랫폼에 얹혀서 제약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요? 제 자료는 제 폴더 안에 두고, 제 규칙으로 정리하고, 필요하면 구조까지 바꾸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의 컨셉을 “컨텐츠 생산 공장”으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컨텐츠는 단순히 글만이 아닙니다. 책, 앱, 게임 등 다양한 디지털 컨텐츠를 생산해서, 제 개인 비즈니스를 확장해 보기로 했습니다. 즉, 블로그는 결과물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생산 과정 전체를 기록하고 정리하며, 결국 제가 만들고 싶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 됩니다. 글은 그 시스템의 기본 단위이고, 책은 글을 구조화한 결과물이며, 앱/게임은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굳힌 결과물입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한 공간에서 연결해 보고 싶습니다.
이 방향성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잘 쓸 수 있는 주제”를 좁히는 방식이 아니라 “계속 만들 수 있는 방식”을 먼저 정했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먼저가 아니라 시스템이 먼저입니다. 어떤 날은 기술 메모를 쌓고, 어떤 날은 책의 챕터를 쓰고, 어떤 날은 작은 도구를 만들고, 어떤 날은 실패를 기록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연결되는 지점이 생기고, 그 연결이 다음 컨텐츠의 씨앗이 됩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결국 제 자산이 됩니다.
물론 아직은 시작입니다. 지금은 사이트를 찾은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단도 없고, 광고 같은 수익화 수단도 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씩 붙여 나갈 생각입니다. 댓글, 이메일, 폼, 뉴스레터, 광고, 유료 컨텐츠, 작은 제품 판매 등 무엇이든 “제가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를 차근차근 실험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볼 예정입니다.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방향이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아니라 지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