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룩(No Look) 키보드#
노룩(No Look) 키보드는 2011년경 구글플레이에 출시했었던 안드로이드 키보드 앱입니다. 현재는 관리상의 이유로 구글플레이에서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이 앱이 단순한 “옛날 앱”이 아니라, 사이드 프로젝트로 앱을 개발해서 실제로 출시해 본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아카이브에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기획의 출발점은 꽤 개인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버스에서 스마트폰 키보드로 무언가를 작성하다가 멀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문득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도 키보드 타이핑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시선은 전방(혹은 멀리)을 두고,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입력할 수 있는 키보드”라는 컨셉을 잡고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입력 방식(컨셉)#
화면에는 크게 좌측과 우측에 2개의 터치 패널이 있고, 각각 왼손 엄지 / 오른손 엄지로 조작하는 것을 의도했습니다. 각 터치 패널은 하나의 키보드처럼 동작했고, 터치 패널의 외곽 8개 영역에 각각 4개의 글자 세트가 매핑되어 있었습니다.
입력은 아래 흐름으로 이뤄졌습니다.
- 터치 패널을 누른 상태에서
- 외곽 8개 영역 중 하나의 방향으로 비비면(touch-and-rub gesture) 그 영역이 선택
- 이후 왔다갔다 비비는 횟수로 4개의 글자 중 하나가 선택
말로만 들으면 어렵지만, 의도는 단순했습니다. “정확히 작은 키를 누르는 것” 대신, 방향 + 반복 횟수라는 큰 제스처로 입력하면, 화면을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입력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었습니다.
키보드 셋 전환과 사용자 정의#
또 한 가지 핵심은 “키보드 셋” 개념이었습니다. 터치 패널을 클릭(터치했다가 비비지 않고 그냥 떼기)하면 키보드 셋이 바뀌도록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영어 / 한글 / 숫자 / 기호 셋이 있었고, 여기에 사용자 정의 키보드를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정의 키보드에서는, 하나의 키보드 셋 안에 영어 / 한글 / 숫자 / 기호를 원하는 대로 섞어 넣거나, 없는 문자를 추가하거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넣는 식으로 “나만의 입력판”을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UX가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자주 쓰는 입력을 내가 재배치한다”는 발상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시연 영상#
아래는 노룩 키보드의 동작을 보여주는 시연 영상입니다.
출시 후 반응: 참신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출시 후 지인들에게 공유하고 실제로 써보게 했는데, 결과는 꽤 명확했습니다. 컨셉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원하는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었습니다.
반면에, “어려운 문제 푸는 걸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은 노룩 키보드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룩 키보드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학습 비용이 높고, 익숙한 QWERTY(또는 천지인 등) 대비 즉각적인 효용을 체감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앱을 보여주면 흥미로워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재미있는 데모” 같은 목적으로라도 스토어에 계속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왜 내렸나: 유지보수 비용과 현실적인 판단#
시간이 지나면서 안드로이드는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그에 따라 앱도 업데이트 이슈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개인 리소스를 계속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고, 관리상의 이유로 구글플레이에서 앱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노룩 키보드는 “성공한 제품”이라기보다, 처음으로 끝까지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아 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의 프로젝트에서는 “사용성 학습 비용”, “온보딩”, “대중성” 같은 문제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보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앱은 제게 매우 값진 실패 사례였습니다.